길은 없고 다만 천길 바위 위에서 떨어지는 폭포가 마치 은하수를 거꾸로 쏟는 듯하고,오가는 나무꾼이 작은 돌멩이를 올려놓아 길을 표시하여 두었는데 나무 그늘이 하늘을 가리어 햇볕이 들지 않았다.[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지리산은 그 산맥을 떠도는 바람만큼이나 수많은 이야기가 흘러 다니는데, 지리천왕(智異天王)과 여신(女神)숭배에 대한 설화들도 많이 떠다닌다.그중에서도 김종직의 「유두류록」에 보면, 그는 천왕봉에 올라가 맨 먼저 성모 묘에 있는 당집에 들어가 주과(酒果)를 차려놓고 성모상 앞에서 제를 올렸다. 이 성모상의 기원에 대해
바람이 눈앞에서어른거리나 싶더니솔방울 하나툭, 하고소 등으로 떨어졌다깜짝 놀란 소길길이 뛰더니,산문으로 들어가십우도 속으로사라져 버렸다- ‘흰 소를 찾아서’, 윤재훈[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쌍계사 대웅전에는 요즘 보기 힘든 나무로 만든 부처들이 있다. 그것도 일곱 개나 있어 칠존불이라고 부른다. 바로 ‘목조석가여래 삼불좌상(木造釋迦如來三佛坐像)’과 ‘사보살 입상(四菩薩立像)’으로, 이중 삼불좌상은 석가모니불과 아미타불, 약사불을 말하며, 사보살 입상은 그 양쪽에 있는 네 개의 보살입상으로 일광(日光)·월광(月光)·관음(觀音)·세지
깜짝 놀란 소길길이 뛰더니,산문으로 들어가십우도 속으로사라져 버렸다- ‘흰 소를 찾아서', 윤재훈[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아버지 현종의 이른 사망으로 12세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조선의 제19대 왕 숙종,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필자는 왕조 국가의 허약성과 민중의 삶을 위한 안전장치가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요즘의 대통령제에서도 이런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어떻게 요행히 시대가 맞아 그 준비와 인성이 전혀 되지 않은 군주를 뽑아 민주주의를 후퇴하게 만들고 국민을 허탈하게 만드는 모습을 수시로 볼 수 있
조선 후기, 한국 불화를 꽃피우다. 쌍계사의 ’삼세불도(三世佛圖)‘ 산자락 적시며 휩쓸리는바람소리공허한 궤적마다소리, 소리들이 흐르고 있다만물로 통하는 깨달음송화에 뒤덮여빛살처럼 흩날리는데그 누구도 섬세한 선율에접근할 수조차 없어라석가솔바람에 입술 적시고도안타까운 듯연꽃을 드니군도들 속에서물결처럼 흘러드는 미소- ‘염화시중’, 손정모[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대항해 시대에 문을 연 유럽 열강들이 한창 아시아의 땅을 노리며 호시탐탐 진출할 때, 이 땅은 세계의 정세에 캄캄했다. 기껏 중국을 오가며 선진문물을 배우던 18세기 말, 조선
다가서지 마라눈과 코는 벌써 돌아가고마지막 흔적만 남은 석불 한 분지금 막 완성을 꾀하고 있다다시 한 송이 돌로 돌아가는자연 앞에시간은 아무 데도 없다부질없이 두 손 모으지 마라완성이라는 말도다만 저 멀리 비켜서거라- ‘돌아가는 길’, 문정희[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구례 화엄사와 천은사와 더불어 지리산 3대 명찰로 손꼽히는 쌍계사는 진감국사에 의해 세워졌으며, 수많은 보물을 간직하고 있다. 특히나 진감국사가 세운 이 절의 가람 구성은 ‘금당 영역’과 벽암 스님에 의해 중창된 대웅전 영역의 두 공간으로 구분되어, 다른 절에서는 보기
우지마라, 촛불아불어오는 바람 앞에 결코 꺼지지 말아라내가 민의(民意)이다조선 500년의 법궁, 광화문 앞에서이 추운 겨울 날왜 그리 많은 사람이 나와 떨고 있는가이 나라는 왜 이렇게, 기형적인가촛불이 구국이었다촛불이 탄핵(彈劾)이었다- ‘우지마라 촛불아’, 윤재훈[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해남 대흥사 말사인 일지암은 차로 유명하다. 초의 선사가 머물러서 더욱 유명해졌고 그의 시우(詩友)였던 추사 김정희와 다산 정약용도 인연이 있다.우리 차에는 다도(茶道)라는 것이 있는데, 차 한 잔을 마셔도 예법이 있다. 서로의 우정을 돈독히 하며
섬진강 530리를 따라, 아릿아릿 아지랑이 피어오르는둑길을 걸었던 추억을 잊지 못한다. 내 머리 위에서 팡, 팡, 터지며 혼절할 듯피어오르던 그 벚꽃 내음,어느 논둑길에 제 무게에 못 이기고 쓰러져 있던빨간 앵두나무에서 입이 붉도록 따 먹고서로의 얼굴을 보고 웃던 일[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봄이면 섬진강을 따라 화계 장터에서 이어지는 10리 벚꽃길이 아름다운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본사인 쌍계사(雙磎寺), 남북국시대인 통일신라 성덕왕 23년인 724년에 의상대사의 제자인 승려 삼법과 대비 두 화상이 개산하고, 진감선사가 가람구조
혼자 가는 산길거치적거리는 것 없어 편안하고외로움은 따라와서 나를 더욱 살갑게 한다내 눈에 뛰어드는 우리나라안개 걷힌 산골짜기 모두청학동이어서발길 머물고 그냥 살고 싶어라- 가는 길 모두가 청학동이다, 이성부[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지리산, 우리나라 국립공원 1호, 설악산이나 북한산처럼 암산(巖山)이 아니라 흙산으로 아가의 둔부같이 부드럽게 뻗어 나간 능선이 편안한 산, 그러나 그 산 앞에 서면 일단 그 크기에 압도된다.그 장엄한 산 앞에서는 시인이 아니더라도 일단 자신이 왜소해지며, ‘나란 누구인가?’라는 오래된 질문이 떠오른다
"스스로를 등불로 삼고 남을 의지처로 하지 말 것이며, 법을 등불로 여기고 의지하라."-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고색창연(古色蒼然)하다는 말이 저절로 이해될 것 같은 2층의 팔작지붕 기와집, 그 앞에서 발걸음이 멈춰진다. 뜨락은 고요하고 부처님의 갈비뼈 같은 빗살무늬가 마당에 선명하게 보일 것만 것 같다. ‘아름답다’라는 말이 입안에서 저절로 흘러나온다. ‘각황전(覺皇殿)’은 한국 화엄종의 중심도량이다.사방에 화엄경 80권을 돌아 새긴 석경을 장식했으나, 정유재란 때 이 땅의 정기를 끊으려고 했는지,
세상의 모든 인연과 물욕을 끊고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오직 나와의 철저한 무문관(無門關) 싸움에서,덧없는 몸을 조복(調伏) 받아궁극적으로 성불을 이루고자 들어간 것 아닌가.[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싯다르타 부처님이 인도에서 왕자로 태어나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고, 그 법이 양 나래를 펴고 남방과 북방으로 흘러갔다.남방으로 흘러간 법은 미얀마와 타일랜드, 캄보디아, 라오스,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등을 흘러가며 ‘소승불교, 히나야나, 테라와다불교, 부파불교, 상좌부불교, 고대불교’라는 이름들로 변해갔다.누런 황하의 물줄기를 따라
해 질 무렵이면 온 산을 돌아 울리는 범종 소리와대북, 목어, 운판의 소리는 과연 이 나라가 화엄의 불국토임을,한국민이면 알 듯하다.그 범어 소리를 들으며 저절로 발걸음이 숙연해지고그 발아래 벌레 한 마리라도 밟힐까 봐, 저윽이 조심스러워진다.한반도의 아랫도리에 우뚝 솟아 오랜 세월 우리 민족에게자부심과 긍지를 안겨주었던 성스러운 산,영남과 호남의 양 지방에 걸쳐서 그 경계를 이루며,산세가 부드럽고 산림이 울창하여사철 산악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삼남의 여러 나라들이 오랜 세월 서로 각축을 벌였고 남
만약 그대가 지리산 천왕봉까지숨이 치받도록 오르고 싶다면중산리를 따라 올라도 좋다.계곡을 건너 숨이 몇 번 헐떡거리도록용틀임까지 치고 나면마침내 천왕봉이 보일 것이다.그곳에서 웅지를 펴고반야봉 쪽으로 손차양을 하고 바라봐도 좋으리라그래도 못내 서운한 것이 있으며섬진강 십 리 벚꽃 길을 걷거나,천 년을 에돌아 나오는 천은사 범종 소리를 듣거나,지리산으로 치는 노을 빛을 바라보며,작설차 한 잔 혀끝에 머금어도 좋으리라- ‘저 멀리 천왕봉이 보인다’, 윤재훈[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지리산은 확실히 기암괴석이 즐비한 북한산이나 설악산 등
일본은 유사 이래 우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숙명적인 업이있는 모양이다. 그것은 어쩌면 섬나라의 숙명이며 그들이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가 바다 건너 가장 가까운 이 땅뿐이 없으니, 정한론(征韓論) 같은 미망(迷妄)을 내세워 끊임없이 침범하는 모양이다.[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지리산의 이름은 '특이하게 슬기롭고, 지혜로운 산'이라는 의미에서 비롯되었다. 이는 고대 불교에서 지리산을 지혜의 보살인 문수보살의 도량을 본 것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 그 뒤 고대국가가 형성되면서부터는 지리산은 산신 신앙의 영험한 장소로 알려지면서, 현재까지
물은 공덕이 많다. 그 환경을 탓하지 않는다소(沼)를 만나면 모든 마음을 심중(心中)에 두고,나무뿌리에도 골고루 물을 적셔준다.민중들의 터져 나오던 웃음소리와 고함,상처 입은 사람들의 이야기도 잔잔하게 들려준다.이 세상의 모든 잡된 이야기들은 단지 마음속에만 두고,그들이 버린 쓰레기들만 다 싣고 흘러간다.급하게 흘러가거나 모나지도 않다.이 세상에 가장 낮은 곳으로 흘러 흘러,그보다 더 낮은 곳에 있는 바다로 들어가 마침내 몸을 푼다.- '물의 공덕', 윤재훈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워진다는 산, 지리산(智異山)’.장명등(長明燈
동족상잔의 비극이 고스란히 머물러 있는 山.친일이 청산되지 않아 모든 비극을 머금고 있는 땅,동포들의 가슴에 총을 겨눌 수 없다는 그 마음에 총을 난사하여,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만들어 낸 위정자들,해방공간에서 만들어진 그 비극들이 수많은 독립투사의 피를 요구했고,78년 동안 해결되지 못한 민족의 한으로 남아 있다.지금도 철조망 건너 동족의 가슴에서로 총을 겨누고 있는 비극의 땅이다.[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음양수, 음양수(陰陽水), 자꾸만 읊조리니 입 안에서 단내가 나는 듯하다. 그 푸른 물맛을 한번 맛보고 싶다. 아이를 갖고
[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조선 시대 선현들의 지리산 유람은 꾸준히 지속되는 양상이다. 특히나 나라가 어지럽고 권력의 끄나풀이 끊어지면 더욱 많은 사람이 산속으로 숨어들었을 것이다. 수없는 당파싸움에 권력들은 명멸하고 하룻밤 사이에 집 안은 쑥밭이 되고 귀양을 가는 사람이 부지기수였을 것이다. 그야말로 ‘권불십년(權不十年)’의 허명에 사람은 일생을 사는지도 모른다.어디선가 바람 한 자락, 미닫이문을 흔들고 간다처마의 낙수(落水)를 받아 벼룻물 삼고, 벗들 사이에 왕복한 편지 조각들을 이어 붙이다 밤을 새운다. 내가 쓰는 덧없는 글은
시대를 통음(痛飮)하는 그의 목소리가 대바람 소리 사이로 들려오는 듯하다.그와 더불어 평상(平床) 위에 앉아 술 한 잔 나누고 싶은 세월이다.시절은 더욱 하, 수상하고 언로(言路)는 숨 막혀가며, 국민의 소리는 반영되지 않는 시국이다.[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곧은 성격의 고운 최치원은 41세에 속세를 등지면서 ‘청산맹약시(靑山盟約詩)'를 남긴다. ‘산에 사는 중에게’는 자신의 심경을 말하는 것이다.스님이여, 청산이 좋다 말씀 마오.산이 좋다면서 왜 다시 산을 나오시오.뒷날에 내 자취 시험해 보시구려!한 번 들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
봄에는 꽃이 땅에 가득하고가을엔 낙엽이 하늘을 덮었는데지극한 도(道)는 문자를 여의고원래 눈앞에 있다네.진리를 말할 것 있나강이 맑으니 달그림자 통하고단풍잎은 가을 산을 비었네.- 화개동시(花開洞詩), 고운 최치원[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신라의 기인, 이 땅의 풍류의 시대를 연 해동공자 최치원도 권력의 염증을 느끼고 명산을 찾아 지리산이나 가야산으로 스며든다.동쪽 나라 화개동은병 속의 딴 세계라,신선이 옥침(玉枕)을 베니순식간에 천 년이 되었네.일만 골짜기에 우레 소리 울리고일천 봉우리에 비 맞은 초목 새로워,산 승은 세월을 잊고
개인 놀 단풍길에 그림자 섯갈리고비 오는 밤 흰 구름 여울에 소리 연했다.읊는 정은 경치를 대하니 속박이 없고사해(四海)의 깊은 기틀 도(道)를 생각하니 편안하네.- 기호원상인(寄顥源上人)에게, 최치원[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남효온은 조선의 5대 왕 문종의 부인인 현덕왕후(顯德王后)의 능인 소릉(昭陵)의 복위를 상소한다. 왕후는 숙부 수양대군에 의해 어린 나이에 폐군이 된 단종의 어머니이다. 그러나 소릉의 복위(復位)는 세조가 즉위하고 거기에서 배출된 공신들의 명분을 직접 부정한 것으로서 당시로선 목숨을 내걸고 하는 주청(奏請)이
두류산 깊고 저녁 구름 낮은 곳온 골짜기와 온 바위들이 회계산같네.지팡이 짚고서 청학동 찾으려 하니숲 너머에선 부질없는 흰 원숭이 울음소리뿐- ‘두류산 깊고 저녁 구름 낮은 곳’, 이인로[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사림(士林)은 사헌부(司憲府)와 사간원(司諫院)을 말한다. 조선에 언로(言路)를 맡은 선비들이다. 왕에게 직언(直言)를 마다하지 말아야 하고, 때로는 목숨을 내놓고 역린(逆鱗)를 건드리기도 해야 한다. 이 둘을 대간(臺諫)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사극을 보면 ‘대간은 탄핵(彈劾)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 여기에서 나온다. 여기에